숲 속을 헤메다
숲 속에 난 도로를 따라 젊은 남녀가 급하게 쫒기듯 내달립니다. 한쪽 눈이 빨간 하얀 니트 옷을 입은 남자는 연신 숨을 헐떡입니다. 여린 볼과 턱에 상처가 있는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쉬지 않고 달립니다. 남자가 뒤를 쳐다봅니다. 하늘 위에서는 집채만큼 커다란 잿빛 큐브가 이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방향을 바꿔 숲 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더 내달린 후 어떤 건물 앞에 멈춰섭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 위를 바라보니 큐브는 두 사람을 찾지 못하고 건물 위로 지나쳐 버립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던 두 사람. 여성이 손짓으로 남성에게 이동하자는 표시를 합니다.
'저기로 가자.'
폐허
비가 추적추적 오고 바깥은 지저분한 잔해들이 가득합니다. 두 사람은 차갑고 어두운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건물 내부는 더욱 처참합니다. 온갖 쓰레기로 뒤덮혀 있던 중 건물의 한 가운데에서 옷이 산더미만큼 쌓여있는 장면을 봅니다. 이 옷은 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왜 여기에 가득 쌓여있는 것인지 두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때, 두 사람은 유리로 된 천장을 통해 큐브를 다시 발견하고는 급히 몸을 피합니다. 다 썩어가는 나무로 된 책상 아래서 큐브를 따돌린 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건물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건물은 폐허가 되었지만 옷 가게의 마네킹은 멋진 옷을 입고 두 사람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의 손을 놓고 본격적으로 내부를 둘러보려는 사이에, 문득 무엇인가를 발견한 그가 무언가를 집어 듭니다. 그가 집어든 것은 어느 낡은 캠코더. 캠코더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는 그. 캠코더 속의 그녀는 얼굴에 상처 하나 없는 맑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가 놀라 가만히 있자 그녀가 캠코더를 받아 확인해봅니다. 캠코더를 통해 바라본 그는 지금처럼 지치고 남루한 모습이 아닌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그의 뒤에 있는 티비와 장비마저도 폐허가 아닌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갑니다. 캠코더를 눈에 댄 채로. 그녀는 캠코더 속 그의 머리를 떨리는 손으로 단정히 넘깁니다.
캠코더 속의 두 사람
두 사람은 캠코더를 이용해 서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낍니다. 비록 현실은 폐허가 되었지만 캠코더 속에서 그들은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밝게 웃습니다. 그녀가 포크로 허공을 찍어 입으로 가져갑니다.
'진짜로 먹은 것 같아. 너도 먹어봐.'
입술에 작은 체인 피어싱이 있는 그녀는 그에게도 먹어보라며 수화로 말합니다. 캠코더 속 그도 음식을 먹으며 밝게 웃습니다. 그녀가 그의 입에 묻은 음식 가루를 닦아내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마치 여긴 폐허가 아닌 것처럼.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사진도 같이 찍고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 마치 결혼식 파티같은 분위기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둘만의 시간을 행복한 웃음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함께한 두 사람
즐거운 한때. 다시 큐브가 두 사람 앞에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큐브를 피해 손을 잡고 내달립니다. 막다른 길, 구멍 뚫린 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니 온 세상엔 큐브가 가득합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뒤로 돌아 도망쳐 결국 옷이 산더미같이 쌓인 곳까지 몰려 버립니다. 버려져 있던 철근을 집어 들어 싸우려고 하는 그녀에게서 무기를 빼앗은 그는 점점 다가오는 큐브를 향해 처절한 표정으로 무기를 휘두릅니다. 큐브는 굴하지 않고 두 사람에게 점점 다가갑니다. 이제 두 사람에겐 남은 힘이 없습니다.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은 그를 뒤에서 껴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포갭니다. 큐브가 점점 빨갛게 달아올라 두 사람을 위협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한쪽 눈만 사용할 수 있는 그를 위해 자신의 손으로 그의 눈을 가립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위한 사랑의 행동을 한 두사람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집니다.
이윽고 캠코더가 바닥에 떨어지고 배터리가 모두 소모됩니다. 캠코더에 마지막으로 찍힌 장면은 두 사람이 하늘로 떠오른는 장면입니다. 연기가 되어 하늘로 떠오른 두 사람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만 남아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는 그들도 산더미같은 옷가지의 일부가 됩니다.
이 두 사람을 쫒는 큐브의 존재는 차별과 억압을 뜻합니다. 지금 일상에서 만연한 차별과 비난 등 대혐오의 시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차별과 비난이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억압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현재 세상은 폐허가 되었지만 캠코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폐허가 되기 전 정상적인 세상이자 서로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캠코더의 의미는 사랑을 담은 필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두 사람만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아닌 주변 세상까지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장비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면 입에 체인이 작은 피어싱처럼 걸려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수화로 의사소통한다는 점과 같이 빗대어 보았을 때,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도 한쪽 눈을 사용할 수 없으면서 힘든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사랑으로 마지막까지 서로의 가장 중요한 신체 부분까지 보호하며 끝까지 이겨내고자 큐브에게 맞섭니다.
마지막에 캠코더를 통해 바라본 두 사람은 육체가 소멸되면서 하늘 위로 날아갑니다. 이 부분은 큐브의 온갖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짐을 뜻합니다. 두 사람은 소멸되는 그 순간까지 서로를 사랑하면서 마침내 자유로워 졌습니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는 현실적으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의 결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잠깐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큐브로 인해 육체가 소멸되고 그들의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만 남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사랑의 결실이지만 실제로 사랑으로 하나 된 두 사람이 소멸하면서 남게된 이 옷들이 과연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말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승연애3 6화, 새로운 입주자 등장 (1) | 2024.01.28 |
---|---|
2023 AFC 아시안컵, 대한민국 vs 말레이시아 리뷰 (1) | 2024.01.26 |
영화 소풍, 임영웅 자작곡에 나태주 손글씨 (0) | 2024.01.24 |
내 남편과 결혼해줘 5화, 고백은 묵직하게 (0) | 2024.01.23 |
내 남편과 결혼해줘 4화, 최고의 조력자 (1) | 2024.01.22 |